울산 앞바다 어디쯤 도착했을까. 태평양 2만㎞를 헤엄쳐와 솟구칠 그 거대한 몸에는 얼마나 많은 따개비의 상흔이 새겨졌으려나. 동해의 포말이 기운차게 밀려드는 항구 앞에 선다. 즐비한 대게집과 초장집, 활어판매센터를 지나면 붉은 귀신고래가, 정자천을 끼고 들어서면 흰 귀신고래가 반긴다.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백경'이 떠오른다. 포경선의 선장과 선원들이 '모비 딕'이라는 포악한 흰고래와 목숨 걸고 싸우다 수장되는, 마지막 장면의 바다는 지금껏 목덜미가 서늘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잔잔해진 바다엔 오직
여우비가 올 거라는 기상예보가 현관을 나서는 순간 어긋난다. 아니다, 꼭 들어맞는다. 오늘은 여고 친구들과 나들이하는 날. 시집간 '여우(女友)'들이 한 무리 짓기로 진즉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목적지는 물 반 고기 반이라 지인망어업이 발달했다는 나사리 바다, 그리고 발갛고 하얀 등대다. 꼬리 다섯씩 달고 나름 한 재주를 헹헹 부리는 완희, 정옥, 해윤을 가는 길에 태우고 남으로 달린다. '돌아가고파 사랑하고파/ 아아 우리는 여고 졸업'생'/ (중략)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이이이이이…' 서생
꽃바위라는 이름의 마을은 어떤 꽃으로 시월을 물들일까. 구절초, 해국, 감국이 노란 폭죽을 터뜨리는 이즈음엔 피고 또 함빡 피어도 꽃이 마구 그립다. 오늘은 시가 술술 떠오를지도 몰라 이생진 시인의 바다 시집을 끼고, 방어진항 서쪽 끝 '꽃방(꽃바위방어진) 마을'로 간다. 바위가 꽃을 피우다니, 그리움이 얼마나 여물어야 하는 일일까. 주차장이 곧 도로인 화암등대로가 1.3㎞ 방파제를 끼고 시원하게 길을 내준다. 초입부터 방파제 위 전망테크가 눈길을 끈다. 걸어서 들어가면 오가는 시간이 30분은 될 성 싶다.등대를 만나
눅진한 달력 한 장을 뜯자 가을이 왔다. 귀뚜라미, 철써기, 여치들의 중창이 드높아져도 변화무상한 자연은 달력의 찰나처럼 순탄치 않다. 올가을의 첫날은 비와 바람의 탱고로 어지러웠다. 속수무책의 관객인 나는 춤을 추지 못한다. 밀롱가를 배워 남미로 카페리호 여행을 꿈꾸는 친구, 조의 실력은 얼마나 늘었을까. 정오를 넘어서자 신나던 춤곡이 늘어진다. 오늘은 문무대왕의 기운이 든 울산 끝자락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근대의 역사가 된 등대가 있다. 땡볕을 무릅쓰고 한 달 전에도 다니러 온 곳. 대형 마스크를 끼고 입을 다문 미르놀이터에는
지극한 만남은 곡진하기 그지없는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두둥두둥 둥당 둥기당, 어느 전생의 못다 이룬 사랑이 꿈결에도 나의 별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가. 그를 들으려 방어진항 끝자락의 성끝마을, 동진포구로 간다. 해상공원으로 단장한 입구가 환하다. 주차장 왼편 언덕배기에선 소리박물관과 소리카페가 파랑의 일렁임을 듣고 있다. 주차장을 둥그렇게 감싼 계단식 쉼터에 앉으니 바윗돌을 어루만지는 물보라 틈에서 갯강구들이 바쁘다. 장난감 같은 낚싯대로 꽃게를 잡아 올리는 아빠와 아이는 신이 났다. 태화루 푸른 병과 오징어땅콩을 소일 삼은 두 중년